밖에 나가기 전 플레이리스트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첫 곡이 오늘의 속도를 정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신나는 곡은 과하고, 조용한 곡은 잠이 올 것 같고, 새로 저장한 곡은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결국 아무 곡이나 틀고 나가도 하루는 굴러갑니다. 분위기는 음악이 만들기도 하지만, 문을 나선 내가 만들기도 합니다.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은 생각보다 큰 책임을 집니다. 그 곡이 하루의 속도를 정하고, 산책의 보폭을 만들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기분에 첫 문장을 붙여 줍니다.

첫 곡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음악을 듣기 전에 이미 듣고 싶은 나를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을 내고 싶은지, 조용히 가라앉고 싶은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싶은지 선택해야 합니다.

웃음은 결국 익숙한 곡으로 돌아갈 때 생깁니다. 새롭고 멋진 리스트를 만들겠다며 한참 둘러보다가도, 손은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를 다시 누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곡은 취향보다 컨디션에 가까운 기록입니다. 오늘웃김은 재생 버튼 앞에서 잠깐 머뭇거리는 마음을 일상의 작은 장면으로 남깁니다.

첫 곡을 바꾸지 못하는 마음에는 실패를 줄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이미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노래를 고르면, 낯선 하루라도 출발선은 조금 안정적으로 느껴집니다.

익숙한 노래를 다시 고르는 일은 게으른 선택처럼 보여도, 때로는 오늘의 마음을 가장 빠르게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첫 곡을 고르는 시간은 오늘의 마음을 고르는 시간입니다. 결국 익숙한 노래로 돌아가더라도, 그 선택 덕분에 하루는 조금 더 분명한 리듬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