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 갑자기 관람이 성실해집니다. 작품 앞에 조금 더 오래 서 있어야 할 것 같고, 고개도 천천히 끄덕이게 됩니다.

문제는 설명과 발걸음 속도가 늘 같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해설은 작가의 생애로 들어갔는데 내 눈은 이미 옆 작품의 색을 보고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은근히 양심의 갈림길에 섭니다. 설명을 끝까지 들을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다음 번호를 누를 것인가. 아무도 보지 않지만 괜히 예의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래도 오디오 가이드는 좋은 장치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작품 앞에서도 잠깐 멈출 이유를 주고, 혼자 보는 전시에 작은 동행을 만들어줍니다.